피플 > 뉴스룸 칼럼 [우리는 간호사다] Happy Valentine Day! 푸른 눈의 환자가 준 감동 2022.03.10

 

다리의 난간이 만들어낸 들쑥날쑥한 그림자를 따라 다리를 건너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녹회색에 가까운 푸른 빛살이 다리 아래 강물에 아른거렸다. 어쩐지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 ‘덕분에’ 챌린지로 모두가 코로나19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에게 감사를 보내던 2021년은 주어진 모든 일이 당장 처리해야 할 일거리처럼 느껴지고, 쉬운 일도 힘겹게 느껴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해결해야할 일거리가 아닌 사람을 돌보는 일인데…때로는 도무지 혼자 해낼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어서 도움을 주고 받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우리는 ‘팀’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선배, 후배, 동기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서로의 눈빛에 기대어 일해오고 있었다.

 

지난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때 한 보호자로부터 우리 병동으로 편지와 초콜렛이 전달되었다. 편지에는 현실과 악몽을 구분할 수 없는 매일매일 세상이 무너지고 캄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간호사님들의 케어와 격려로 하루하루를 버텼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쌓인 하루가 기적이 되어 남편이 의식을 되찾고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며, 삶의 Valentine(연인)인 남편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어서 조금이나마 감사드리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편지의 주인공은 푸른 눈의 40대 외국인 환자다. 편지를 읽고 환자와의 첫만남, 그리고 20여 일 동안의 시간들이 스쳐갔다. 급성기 뇌졸중 환자로 2주 간 중환자실 케어 후 신경과 병동으로 왔다. 의식은 없었고 목에는 기관절개관을 삽입했기 때문에 입으로 소리를 낼 수조차 없었다. 대신 거칠게 반복되는 호흡 소리와 환자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한 기계들이 내는 요란한 소리들이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있을 뿐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면회가 어려워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남편의 처참한 상황에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슬픈 눈빛을 한 배우자는 작고 연약해 보였다. 배우자의 시선이 빠르게 주변 환자들을 스쳐갔고, 몸은 떨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병동은 급성기 뇌졸중, 퇴행성 뇌질환으로 평생을 후유증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환자들이 치료받는 곳이다. 그들이 아프기 전에 당연하게 해왔던 식사, 호흡, 배설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돌봄이 필요해진다. 사람을 돌본다는 건 환자가 건강했다면 직접 행했을 일을 환자를 위해 해준다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여력과 의지가 생길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난생 처음 이러한 상황을 직면한 보호자가 있다. 나는 그러한 환자 보호자를 만나며 내가 간호사가 아니었다면 느낄 수 없었을 감정적으로 벅찬 순간들을 자주 경험한다.

 

우리 병동의 간호사들은 이 환자에게 급성기 기간 동안 이어진 수차례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해 늘 긴장상태였다. 매 순간 ‘내가 하나라도 놓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었고,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이 오지는 않을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했다. 모든 것에 취약하기 때문에 세심함이 큰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자의 간호에는 개인적인 보살핌도 포함된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자세를 자주 변경하고 스스로 움직이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환자를 위해 가장 편안한 체위를 찾아주어 쉴 수 있게 해주었다. 90kg 가까이 되는 환자의 체위를 바꾸거나 배설 간호를 보호자와 함께 해야 할 때, 침대는 흔들거리고 보호자의 표정에는 창피함과 고통이 역력했다. “환자가 숨을 안 쉬어요”, “도와주세요”라는 요청에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달려와 석션을 해 숨을 쉬게 해주는 모습에 보호자는 우리를 ‘어벤져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침상 옆 환자의 두 딸의 사진을 보며 문득 예전의 환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했다. 종종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단서를 찾으려고 그들의 삶을 상상해보곤 한다. 지금 상황이 그들 삶의 전체 그림에 어떤 영향을 줄지 그려본다. 그는 질병이 들이닥치기 전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이었고, 예쁜 두 딸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이었다. 소중한 가족이 있는 우리 모두 그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고 슬펐다. 어떤 사람도 겪어선 안 되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보여준 간호 때문에 보호자가 더 용기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자에게는 난생 처음이지만 가족을 위해 감당해야 할 모든 일들을 우리는 환자의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해주고 있었다. 환자들은 우리를 믿고 그만큼 품을 내어주는 것이고, 그렇기에 환자들이 회복하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 보호자가 전해 온 편지를 읽으며 우리가 해온 일들이 얼마나 대단한 용기를 주는지 느꼈다. 그리고 그 감동이 간호사 동료들의 마음 속에 심어져,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모두의 안에서 크게 자라나 있었다.

 

어느덧 자연스레 출근해서 익숙한 일들을 능숙하게 해내는 당신, 무척 당연해진 일상에 잠시 잊었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이 순간에도 환자 옆을 지키는 간호사입니다. 잠깐, 이 글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생각해 주시겠어요? 당신이 얼마나 빛나고 멋진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요.

 

내과간호2팀
손다혜 대리

내과간호2팀 손다혜 대리는 2012년 입사해 현재 신경과 입원 환자를 치료하는 병동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뇌졸중, 뇌전증 등 뇌혈관 및 뇌신경 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이 퇴원 후 건강하게 일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게 진심을 다해 간호하고 있습니다. 환자를 돌보며 느낀 깨달음을 통해 간호 업무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