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위해 과 사무실에 들렀을 때다. 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언어병리학 연구를 도울
연구원을 구하고 있었다. 언어치료라면 생소하던 때였다. “그게 뭐예요?” 단순한 질문을 시작으로 연구에 합류하게 되었다.
환자 검사와 기초 공부를 병행하며 신경언어장애에 대한 흥미를 키워갔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교육 과정이 전무했다.
전문 언어치료사를 꿈꾸며 일본으로 건너가 국립재활센터 전문인력양성과정을 밟았다. 사회에 유용한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자 더 공부하고 싶어졌다. 다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결혼하고 떠난 터라 현실적인 제약이 따랐다. 석사 과정만 마치고 돌아와야 했다. 그 후 4년간 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 경험을
다졌다. 그 사이 국내에 언어병리학 박사과정이 개설되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학업을 이어갔다. 우리 병원과는 박사를 마쳐가던
2003년에 인연이 닿았다.
“앞선 선배가 없던 시절이라 보이는 길마다 모두 시도해봐야 했어요. 일본과 미국을 오갔고, 학업을 한번에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는 것 같아 늘 아쉬웠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론 임상 경험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었고, 다양한 곳에서 최고의
교육자들을 만났습니다. 공부만으론 한계가 있는 신경언어 분야에서 버릴 만한 경험은 없더라고요.”
어느 날 해외 연수 중이던 소화기내과 정기욱 교수가 메일을 보내왔다. 현지 병원에서 과도한 트림 환자를 언어치료사가 치료한다며
관련 연구를 제안했다. 국내에선 접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당장 답장을 보냈고 함께 스터디를 시작했다. 해당 환자의 ‘위상부트림’
문제를 비디오투시조영 영상으로 확인하고, 증상완화법을 연구해 환자에게 적용하니 효과가 있었다. 이 내용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만약 대학에서 연구만 했다면 이런 협업 과정은 없었겠죠. 최고의 병원에서 다양한 환자 케이스를 접하면서 각 분야 권위자들과
연구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
요즘 권 교수는 음성 지각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미 우리에겐 친숙해진 음성인식 AI지만 말소리 장애를 가진 그녀의 환자들에게
절실한 기능이다. 구급차를 부르거나 병원 업무를 볼 때 음성인식 기능을 이용하면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 그러나 특성이 단일하지
않은 환자들의 음성을 인식하여 처리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다. 권 교수는 신중히 희망을 구체화해갈 예정이다.
권미선 교수에겐 발병 초기 환자의 언어 문제를 정확히 평가하고 치료의 핵심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모든 가능성을 펼쳐놓고
원인을 하나씩 점검해 나간다. 어렵게 그 답을 찾아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처음엔 환자에게 진단 내용을 정확히 알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런데 ‘환자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뭘까?’ 관점을 바꿔 보니 같은
내용이라도 설명을 바꿔서 하게 되고 도움 될 부분을 언급하게 되더라고요.”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한 뇌졸중 환자의 보호자에게 현재 의사소통의 어려운 상황을 가감없이 설명했다. 잠시 후 보호자가 울고불고 좀처럼 진정이 안 된다며
병동에서 연락이 왔다. 부정적인 결론을 이미 내려버린 것이다. 이후 권 교수의 관점과 태도는 달라졌다. 퇴행성 질환이라도 늘
밝은 면을 보도록 유도하고, 급성기 뇌졸중은 가장 심한 지금 상태만 벗어나면 점차 나아질 거라고 안심시킨다. 그러면 환자도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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