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의사의 고집 2017.04.07

의사의 고집 - 정형외과 김재광 교수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 50대 환자였다. 은퇴 후 미국 여행 중 오토바이 사고로 쇄골이 골절됐다. 쇄골이
눌러앉으면서 목에서 손으로 이어지는 상완신경총이 완전히 끊어졌고, 한쪽 팔이 마비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상완신경총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다 3개월 만에 김재광 교수를
찾아왔다. 김 교수는 끊어진 신경을 잇기 위해 12시간 동안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신경 사이를 바느질했다.
10개월이 지난 현재 신경이 회복되어 어깨와 팔꿈치 기능을 되찾은 환자는 지금도 그를 찾는다.


팔을 고치는 의사

정형외과 김재광 교수의 주전공은 손에서 팔꿈치까지를 일컫는 수부 수술이다. 골절이나 신경 마비 환자가 주로 그를 찾아온다.
그의 주특기는 신경이식술. 심한 골절로 신경이 손상되거나 끊어진 경우 그 부위에 새로운 신경을 이식하는 수술이다.
지금의 전공을 선택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인턴시절 충북 제천으로 3개월간 파견진료를 나갔다. 대부분 척추나 관절 문제로
찾아오는 환자들이어서 정형외과가 성황을 이루었다. 통증을 누그러뜨리고 일상생활을 개선하는 정형외과의 매력에 푹 빠져 서울로
돌아왔다. 그 뒤 주저하지 않고 정형외과를 지원했다.

군의관을 마칠 때쯤 담당 교수가 그를 호출했다.
“수부를 해 보지 않겠나?”
환자의 팔이나 다리뼈를 붙들고 씨름하기에 상대적으로 체력이 달렸다. 더군다나 손은 평생 가장 많이 쓰는 부위 중 하나였다.


한 명의 환자를 위해서라도

 

그의 또 다른 주특기는 수부 분야 중에서도 상완신경총 수술이다.
전문 의료진이 아니라면 이름도 낯선 상완신경총. 국내에서 수술하는 의사가
매우 드물다. 환자 수가 적을뿐더러 수술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가 이 수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선배들의 학구열 때문이었다.
이대목동병원에서 조교수로 진료를 막 시작했던 2006년, 의대 2년 선배
故 김진삼 교수와 5년 선배인 김병성 교수(부천 순천향대 정형외과)가
말초신경에 대해 함께 공부하자며 연락이 왔다. 김진삼 교수와는 혹독한
레지던트 시절을 함께 보내며 우정을 쌓아온 터였다. 흔쾌히 동의했다.
말초신경을 공부하던 중 미개척 분야였던 상완신경총에 흥미가 생겼다.
당시 상완신경총 전문 병원은 개인 병원 한 곳뿐이었다. 의욕이 넘치던 때였다.

문을 두드렸다. 병원의 원장은 김 교수 아버지의 오랜 친구였다. 대학병원에서
10년 넘게 수술하던 정형외과 의사가 수술 보조자를 자청하며 1시간 거리에
있는 개인 병원 수술방을 들락거렸다. 이후 대만과 미국 등지에서 실력을
갈고닦으며 상완신경총 치료를 자신의 길로 정했다.

 

김 교수는 올해 1월 상완신경총마비 클리닉을 열었다. 국내에선 유일한 상완신경총 전문 클리닉이다. 일주일에 평균 십여 명의
상완신경총 환자가 그를 찾아온다. 환자 수는 적지만 상완신경총 수술에 고집스레 매달리는 이유가 있다.

사실 상완신경총이 손상되는 가장 큰 원인은 오토바이 사고에요. 환자 대다수가 20대죠. 젊은 시절 한순간 실수로 평생 팔을 잃고
살아야 한다면 안타깝잖아요. 조금이라도 감각을 살려야 일상생활의 불편을 줄일 수 있고, 삶의 질도 달라질 테니까요.
환자가 단 한 명이라도 누군가는 치료해 줘야죠.”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몇 년 전만 해도 신경이 손상된 경우 기능적으로 덜 중요한 조직의 신경을 떼어와 끊어진 부위에 이식했다. 이 치료법은 멀쩡한 부위의
외과적 절개가 수반되었고, 드물긴 하지만 신경이 제거된 부분의 감각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김 교수는 기존 치료법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사체에서 추출한 신경 조직을 특수 처리해 손상부위에 이식하는 동종신경이식 수술을 국내에 도입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2014년 연구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대학(UCSD) 바이오 엔지니어링 공대로 연수를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신경 재생 연구에 집중했다. 조직 재생 분야의 메카였던 그곳에서도 신경 조직 재생에 대한 연구는 초기 단계였다.
1년 6개월의 연수 기간은 너무 짧았다. 결국 연구 결과를 확인하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올해 3월부터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말초신경 재생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연수기간 동안 미처 끝내지 못한
연구를 국내에서 이어갈 계획이다. 그는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아픈 팔을 고치는 의사지만 정작 자신은 목 통증을 안고 산다. 장시간 앉아서 수술해야 하는 팔 고치는 의사의
직업병이다. 하지만 자신을 어렵게 찾아온 환자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 팔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그 순간
통증은 잠시 사라진다.

보다 건강한 콘텐츠 제작을 위해 이 콘텐츠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뒤로가기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개인정보처리방침 | 뉴스룸 운영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