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아산인 이야기 침상에서의 마지막 목욕 2024.06.14

그날의 침상 목욕이 환자에게는 마지막 목욕이었다는 생각에...

- 내과간호1팀 이유라 간호사 -

 

(DALL-E 제작)

 

간경화와 이로 인한 간신증후군을 앓던 김신화(여, 가명) 님은 패혈증 쇼크로 우리 병원 간센터 집중치료실에 입원했다. 입원 당시 환자는 간 기능이 심각하게 떨어져 독성 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하지 못하는 상태였고 고용량의 승압제와 고농도의 산소 치료를 받았다. 보호자인 남편은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는 환자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파했지만 염증 치료 후에 간이식을 고려해보자는 교수님의 말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적극적인 치료에도 감염은 조절되지 않았고 급기야 환자는 의사소통이 불가하고 소리만 지르는 상태로 악화됐다. 몸에 손이 닿으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고 정맥류 출혈까지 발생해 하루에도 몇 번씩 혈변을 보았다. 기저귀를 바꿀 때마다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보면서 보호자도 함께 힘들어했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울기만 하니까 뭐가 힘든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해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진작 더 잘해줄 걸 그랬어요.” 보호자의 목소리에는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지금 보호자분은 옆에서 충분히 잘해드리고 있어요. 저도 지금 이 순간에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같이 최선을 다해서 간호할게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간호를 통해 무엇을 더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입원한 이후 한 번도 감지 못해 엉키고 헝클어진 환자의 머리카락과 각질이 올라온 피부, 길게 자란 손발톱이 눈에 들어왔다. 보호자도 환자를 씻겨주고 싶었지만 몸에 연결된 기계도 많고 누워있는 사람을 씻겨본 적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었다고 했다. 환자와 눈을 맞추고 “오늘 제가 환자분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목욕을 시켜드려도 될까요?”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날따라 환자의 의식이 선명해 보였는데 그때 나를 바라보던 환자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침상에서 머리를 감기며 두피 마사지를 해드리고 길게 늘어져 있던 머리카락은 단정히 묶어드렸다. 온몸을 수건으로 닦은 뒤 로션을 바르고 손발톱도 깔끔하게 잘라내었다.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보호자도 옆에서 함께 환자의 몸을 닦아주었다. 몸을 만지기만 해도 울부짖던 모습과는 달리 “괜찮으세요? 아프진 않으셨어요?”라는 내 물음에 환자는 미소를 보이며 다시 내 눈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침상 목욕을 마친 뒤 보호자는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해줄 생각도 못 하고 저는 또 못해준 걸 후회만 했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우리 딸, 아들이 아내를 보고 놀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예전처럼 말끔해졌네요. 저희 아내 예쁘고 건강할 때 모습을 남기고 싶은데 저희 둘 사진 한 번만 찍어 주실래요?”라고 말했다. 두 분의 사진을 찍어 드리며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간호를 통한 새로운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


며칠 후 환자는 결국 감염이 조절되지 않아 상태가 악화되어 가족 면회를 끝으로 임종했다. 그날의 침상 목욕이 환자에게는 마지막 목욕이었다는 생각에 그날을 다시 되돌아 보았다. 내가 제공하는 간호, 위로, 공감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순간으로 기억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까지 보듬을 수 있는 간호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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